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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6-12 10:10
 단역배우 김순효씨
이수정
다산책방
2025년



“실제 삶과 연기된 삶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삶의 영토를 무한하게 확장해 낸다”라는 평을 받으며 제4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수상한 이수정의 장편소설 『단역배우 김순효 씨』가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동리(桐里) 신재효 선생의 국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1년 고창군이 제정한 고창신재효문학상은, 매해 고창 지역의 역사·자연·지리·인물·문화를 심도 있게 조명하는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자신만의 서사로 고창이라는 장소를 “가장 특별한 공간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공간”으로 만들며,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들의 단연 주목을 받은 『단역배우 김순효 씨』는 가족을 이루는 사랑과 그 이면의 상처를 섬세하게 탐색하는 작품으로, 어머니와 딸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며 삶의 무게와 사랑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소설이다.

☞ 선정 및 수상내역

제4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그길로 엄마가 언니를 부둥켜안고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늘어졌던 언니의 양팔이 들리더니 스르르 엄마 허리를 감았다. 그래도 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니, 더 소리 높여 울었다. 두 사람이 나 때문에 싸우는 것도 싫었지만, 두 사람이 나 때문에 화해하는 건 더 싫었다. 나는 목 놓아 울면서 엄마가 언니의 그 말을 용서하지 않기를 절박하게 바랐다._p.24



오로지 그 단어만으로 만들어진 집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내겐 그게, 소실집이었다. 식구 누구 입에서든 ‘소실집’이 나올라치면 나는 날카로운 더듬이를 지닌 벌레가 귓속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느낌에 시달렸다. 오죽하면, 그 집에서 잘 때 벌레가 귀에서 빠져나와 사방을 기어다니는 것 같아서 밤새 몸을 긁어대야 했다._p.25



글치예! 내가 칠십에 데부했으까니, 남이 맴을 저꺼보는데, 아니, 겪어보는데 칠십 년이 걸렸네예. 그 세월이 있어노이 내 같은 사람도 배우가 될 수 있는 기지예. 늦어서 아쉽기는예. 가당치도 않어예. 지금 내가 요래, 배우가 돼삐맀다 생각하믄 자다가도 좋아서 웃어쌓는데예._p.82



질질 울면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아줌씨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기라요. 돌아보니까 저짝이데요. 얼라를 업고 손에 봉다리 하나를 들고 종종종 뛰어오데요. 봉다리를 내밀길래 받아 열어보이…. 감이 네 개 들은 기라요. 나무에서 금방 땄능가, 이파리가 요래 붙어 있드만요. 먼 길가는데 손이 번잡시러 불 것 같아서 쪼매만 담았다 카데요. 다음에 볼 때 더 많이 준다 카데요. 등에 업힌 얼라가 내한테 손을 뻗데요. 쪼매난 감을 하나 쥐었데예. 저짝이 워메 착한 거, 하니까 얼라가 말을 알아묵는지 감을 내한테로 더 내미는 기라요. 감을 받아주이, 그 조막만 한 손으로 좋다고 손뼉을 치데요._p.177



혹시, 저 나무? 춤추듯 구부러진 가지, 자잘하고 풍성한 진초록 이파리, 그 사이사이 봉긋봉긋 매달린 주홍빛 열매…. 그건, 감이었다. 연푸른 가을 하늘을 캔버스 삼아 주홍 감이 고성능 카메라로 찍어놓은 듯 선명한 배색을 연출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절로 손이 갔다. 연둣빛 지붕도 같이 담으려 감나무가 기댄 돌담 쪽으로 다가갔다._p.191



처음에는 땅을 말하는 줄 알았다. 엄마 것이 아니라 내 ‘어무이’ 것이고, 내 것이라는 그것…. 자리 잡고 앉으니 차창 밖으로 엄마가 손 흔드는 게 보였다. 버스 밖에 달린 뒷 거울 속에 엄마가 조그맣게 들어왔다. 3박 4일 동안, 고창에서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던 엄마 모습과 흡사했다. 오랜 세월, 세상 그 누구도 모르게 혼자 보살펴 온 무덤처럼, 오로지 당신 가슴에만 묻어둔 이야기를 카메라에 대고 풀어내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때 알았다. 엄마 것이 아니라고 한 그것…. 나를 낳은 사람의 것인 동시에 내 것이라고 엄마가 말한 그것…. 그건 땅이 아니라 이야기였다._p.251



우리의 이야기는 엄마가 고창에 처음 가 뜬금없이 그 땅을 사 오던 순간부터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아니,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고창 엄마가 나를 낳던 순간부터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두 엄마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아니, 두 엄마의 엄마가 두 엄마를 낳던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 더 까마득한 옛날부터 시작됐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삼천 년 동안 서로를 고이며 묵묵히 서 있는 고창의 고인돌처럼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알고 보면,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한쪽 어깨 기꺼이 내어주고 서로를 고이며 걸어가는, 세상에 무수한 저 고인 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_p.263
단역배우 김순효 씨 · 008

제4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심사평 · 266

작가의 말 · 268
이수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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